지방 관광 자원 ‘매장량’보다 중요한 ‘제련’의 기술 <왕과 사는 남자>로 보는 관광지 서사의 중요성

충분히 특색있는 지방 관광자원
지자체의 단독 개발의 한계
협업을 통한 브랜딩으로 활성화 필요

전국의 어느 산에 가도 흔들다리가 있고, 어느 바다에 가도 원색의 플라스틱 하트 조형물이 우리를 반깁니다. 여행자로서 아연실색, 망연자실할 만큼 참 당혹스러워요. 그대로만 봐도 좋은 관광지에 하필 그런 조형물을 세워버리면 사족을 달아 놓은 것 같아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옛 나라의 고도에 알 수 없는 포토 존을 세워두고, 산책로에 조악한 흔들다리를 뒀는지 의문이 듭니다.

기괴하게까지 느껴집니다. 단순히 미적 감각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지역이 가진 귀중한 관광자원을 제대로 제련하지 못한 채, 당장의 실적이라는 불순물과 섞어 배출해낸 저품질 관광의 부산물로밖에 안 보입니다. 이런 찌꺼기가 왜 관광지에 껴있을까요?

관광자원은 ‘매장량’보다 ‘제련의 퀄리티’가 중요

관광자원은 마치 막대한 지하자원과 같습니다. 땅속에 묻힌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있듯, 관광자원도 지역의 역사와 문화 역시 현대적인 재해석이라는 고도의 공정을 거쳐야 고부가가치 콘텐츠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유적이 많다는 ‘매장량’이 아니에요. 신라 문화를 공유하는 경상북도 지방 도시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각 지역이 품은 서사의 결은 미세하게 다릅니다. 이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고 극대화하는 것이 브랜딩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재의 행정은 원자재를 그대로 가져다가 제대로 된 제련을 거치지 않고 늘여놓는 데에 그치고 있어 참 안타깝습니다.

한두 명의 실무자와 십수 명의 숟가락

지방자치단체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게 참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나의 지자체가 ‘으쌰으쌰’하며 한 몸이 되어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게 아닙니다. 지역 관광자원 개발을 담당하는 업무는 지자체의 관광 관련 부서가 담당을 하는데, 그 안에서도 실질적인 실무자는 단 한두 명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마케팅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행정직 공무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참신한 기획안도 엎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

순환보직제 안에서 비전문가 담당자는 깊이 있는 서사를 구축할 시간적, 전문적 여유가 없습니다. 거기에 이어서 참신한 기획안을 짜더라도 결재 라인을 타고 올라가며 수많은 ‘비전문 결정권자’의 검열을 거치게 됩니다. “요즘 저 동네 흔들다리가 잘 나간다던데?”라는 한마디에 기획안이 엎어질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지역의 희소성은 순식간에 휘발됩니다.

관료제 안에서 비전문가의 기획안이 통과해야 할 명분도, 그걸 극복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할 개인의 추진력도 약합니다. 왜냐하면 공무원 조직에서 브랜딩의 성공은 드라마틱한 성과급으로 이어지지 않아요. 결국 적당히 하자는 무사안일주의로 인해 안팎으로 비난받지 않을 ‘무난한 저품질 실적’으로 나타납니다.

결국 관료주의라는 깔때기를 통과하며 조악한 ‘하트 조형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흔들다리 꼭 해야 해? 그렇다면 존재의 본질을 부여하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김춘수

만약 피할 수 없는 저품질 실적이라면 존재의 본질을 부여해야 합니다. 최소한 ‘맥락의 옷’을 입혀야 합니다. 여행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조형물과 건축물이 아니라 존재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신라 문화권 어느 도시든 전망대를 만든다면 그것은 그냥 전망대가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화랑 감시대’로 명명하는 것이 좋겠지요.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은 단순한 조망이 아니라 화랑이 응시했던 기개의 현장이 되어야 하죠. 포토 존 또한 뜬금없는 하트가 아니라, 체험용 화랑의 의복과 함께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오브제 속에서 여행자가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선사해야 합니다. 그에 앞서 당연히 ‘화랑테마파크’ 같은 곳이 있어야 하고 충분한 체험 콘텐츠가 있어야 할 겁니다.

이 정도를 최소한 만족해야 ‘고품질 제련’입니다. 똑같은 철근과 콘크리트를 쓰더라도 어떤 서사를 입히느냐에 따라 흉물이 되기도 하고 성지가 되기도 하는 법입니다.

왜 관광지의 서사가 중요할까? ‘왕과 사는 남자’

관료제로 점철된 공무원 사회의 관광 업무 역량을 어떻게 극복할까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전문성의 외주화와 과감한 파트너십’입니다. 지자체는 관광 개발을 공무원 한두 명의 업무로 치부하는 무지와 오만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정선 청령포에 쌓인 서사, 서사의 힘

<왕과 사는 남자> 영화 개봉 이전 강원도 정선의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가 과연 관광 자원으로서 이만큼 가치를 빛냈을까요? 특히, 유배지는 이름에서 오는 부정적인 느낌을 주고,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청령포는 그저 ‘단종이 유배 갔던 곳’, ‘정선 간 김에 들르는 곳’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비극의 역사로만 기억되던 청령포의 분위기를 단숨에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자체가 수십 년간 예산을 들여도 하지 못한 일을, 잘 설계된 콘텐츠와 외부의 창의성이 해낸 것이죠. 배우 박지훈 씨가 분했던 단종을 떠올리며 서강을 건너고, 노산대를 둘러보며 최후를 맞이했던 마루에서 감상에 빠집니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바라보는 시선은 왜 그렇게 바뀌었을까요? 왜 사람들이 찾아올까요? 그게 바로 착실하게 쌓인 서사의 힘입니다.

서사를 쌓기 위한 협업이 중요

이제 관광 자원 개발에 있어서 독단적인 움직임을 멈추고, 전문 에이전시나 브랜딩 전문가 집단에 자본과 권한을 실어줘야 합니다. 경쟁입찰로 가격이 싼 업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원석을 가장 아름답게 깎아낼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를 공모해야 해요. 외부에서 찾아온 강력한 서사를 유연하게 수용하는 역량이 지자체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여행자 입맛도 이제는 고급

여행자 또한 관광 자원을 이런 식으로 소비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맥락 없는 조형물에서 별 의미 없는 사진찍기, 관람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국내 여행에 대해 매력을 더욱 못 느끼게 되니까요. 관광지로 여행을 간 여행자들에게 ‘당신이 이곳으로 여 온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국내 유명 관광지나 국외 여행으로 발길을 돌리게 만듭니다. 지자체의 ‘저품질 채굴’이 멈추지 않는다면, 국내 관광 산업은 우하향할 겁니다. 결국 시장은 수요를 따라가기 마련이니까요.

관광지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와 지역의 희소성이 결합하여 ‘발명’되는 것입니다. 정보를 장악하고 맥락을 읽는 여행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 관광 지도는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서사들로 채워져야 할 겁니다.